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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부정공>죽계공휘윤련행장(竹溪公諱潤璉行狀)
竹溪公諱潤璉行狀 公諱潤璉字大器淳昌人考前參奉倫即副正公瑜之五世孫丙子被禍兵使崇文之玄孫自在髫齡資質粹美氣字軒昂常侍父母側不與凡兒遊戯七歲先君參奉公指天使之作詩公跪對曰無天不生人其窮理之學己根於天然矣十七遊學於朴先生訥齋之門潛心性理不求聞達周易庸學最得其精先生深加歎奇時經廢朝斬伐善類深自韜晦遂卜居於谷城之竹谷盖公雖在燕閒之時必整衣冠尊瞻視以思無邪毋不敬等語常佩服而自警隣里宗族及故舊相與講睦而勸勉又其窮乏者及過期未葬逾限未婚者則輒復賑給使之成禮戊辰薦以講藝習讀庚午又薦主簿典籍連徵不就癸未遽當大無染疫大熾死者相枕限三月賑活竹谷一方家無飢聲野無餓莩道伯以聞特除堂上職爲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且閔思聖後以湖伯來訪即公之妻姨姪也公曰湖伯蓋有山氓之族也仍拒不納盖惡其勢權故也公之見識如此鄉隣敬歎輿地勝覽錄之壬辰十二月二十日而終享年六十葬于上竹谷先塋下子坐原與夫人墓爲上下焉娶慶州金氏前縣監騵女後公一年生先公三年庚寅卒婦德純備治家以法敎子以嚴奉祀以敬御奴以恩人以爲難生四男一女男長俊官判官次健官直長次儼官奉事次傳女適縣監鄭귶公之母夫人崔氏即余從尊姑也同居一里情誼最密且妙年受業有故姑記顚末以待日後之公議云爾 全州 崔克容 狀 죽계공휘윤련행장(竹溪公諱潤璉行狀) 공의 휘는 윤련이요, 자는 대기(大器)이니 순창인이다. 고는 전참봉 윤(倫)이니 바로 부정공 유의 五세손이며 병자년에 화를 당한 병사 숭문의 현손이다. 어려서부터 자질이 아름답고 기국이 헌칠하여 항시 부모를 모시면서 아이들이 장난하고 노는데 참여하지 않았다. 나이 七세에 선군(先君) 참봉공이 하늘을 가리키며 시를 지으라 하였더니 공은 무릎을 꿇고 대답하기를, 『하늘이 없으면 사람이 살지 못한다. (無天不生人)』하였으니 그가 학문을 궁리하는 것이 천성이었던 것이다. 十七세때 눌재(訥齋) 박상(朴祥)선생의 문하에 들어가 성리학 연구에 몰두하면서 현 달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그 가운데서도 「주역」과 「중용(中庸)」에 가장 밝아 눌재선생이 깊이 탄복하였다. 이때는 연산군(燕山君)시절이므로 훌륭한 선비들이 해침을 당하는 것을 보고 자신을 감추고 마침내 곡성 죽곡(竹谷)에 은거하였다. 공은 비록 한가한 때에도 반드시 의관을 정제하고 똑바로 앉아 「사무사(思無邪)」 「무불경(母不敬)」 등의 말을 항상 가슴에 세기고 스스로를 경계하였다. 이웃의 일가 친족 및 친구들에게 서로 화목하게 지내기를 권면하였다. 또 생활이 궁핍하여 때 맞춰 장사를 지내지 못한 자나 나이 차도록 혼인을 못한 자가 있으면 문득 돈을 주선해 주어 예를 이루도록 하였다. 무진년에 강예습독(講藝習讀)에 천거되고 경오년에는 또 주부(主簿)와 전적(典籍)에 천거되었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계미년에 흉년을 만나 전염병이 크게 일어나 죽은 시체가 즐비하였는데 三개월동안 곡식을 풀어 구휼해 살리니 죽곡 한지방은 굶주린 자가 없고 들에는 주려 죽은 시체가 없었다. 도백(道伯)이 조정에 알려 특별히 당상직인 절충장군(折衝將軍)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를 제수하였다. 또 민은성(閔思聖)이후에 호남 방백(方伯:감사)으로 왔는데 그는 바로 공의 처이질(妻姨姪)이다. 공은말하기를, 『호남 방백이 어찌 촌백성의 겨레붙이겠는가.』 하고는 거절하고 집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이는 그의 권세를 미워한 것으로 공의 견식이 이와 같아 인근 사람들이 모두 존경하고 탄복하였다. 이 일은 「여지승람(輿地勝覽)」에 기록되었다. 임진년 十二월 二十二일 졸하니, 향년은 六十인데 상죽곡(上竹谷) 선영 아래 자좌(子坐) 언덕에 장사하니, 부인의 묘와 위아래이다. 경주김씨 전 현감 원(騵)의 따님에게 장가들었는데 공보다 한 살 아래로 공보다 三년 앞선 경인년에 졸하였다. 부덕이 겸비하고 집안을 법도로 다스리고 자식들을 엄하게 가르쳤으며 제사를 경건하게 모시고 노복들을 은혜로 거느려 사람들이 어렵게 여겼다. 四남一녀를 낳았으니 큰 아들 준(俊)은 벼슬이 판관(判官)이요, 다음 건(健)은 벼슬이 직장(官直)이요, 다음 엄(儼)은 벼슬이 봉사(奉事)요, 다음은 부(傳)이며, 딸은 현감 정빈(鄭귶)에게 출가하였는데 바로 공의 모부인 최씨는 바로 나의 종고모로 한 동네에 살면서 정의가 아주 두터웠고, 또 어려서 수업을 몇 년 받았으므로 그 전말을 적어 후일의 공론을 기다린다. 전주(全州) 최극용(崔克容)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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